오래된 친구

1. 이 친구는 정말 끈덕지다. 
어느덧 20년을 훌쩍 넘긴 것 같은데 아직도 곁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처음 만난 그때처럼 하는 짓도 똑같아서 스트레스로예민해지거나 과로로 컨디션이 저조해지면 그걸 또 어떻게 알고 금새 모습을 드러내 더욱 깊은 절망에 빠지게 한다. 잠 잘 때에는좀 해방되겠지 싶겠지만 이 놈이 정말 악랄한 이유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데에 있다. 시계를 보면 분명충분한 수면을 취했을 시간이지만 놈과 싸우며 온 몸을 뒤척이느라 나도 모르는 사이 에너지를 소비한 나머지 매일 아침 방전된 몸을이끌고 고통스럽게 하루를 시작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하도 어릴 때라 기억도 잘 안 나고 부모님도 이에 대해선고개를 절레 절레 흔드실 뿐이니 다른 사람에게 떠 맡길 수 있는 처지도 아니라 답답하기만 하다. 재밌는 사실은 이 친구는 꽤유명해서 거의 전국민이 알다시피하며 겉으로 볼 때는 전혀 아닌 듯 싶지만 알고보면 같은 이유로 꽤나 괴롭힘을 당하고살았던 친구들이 내 주위에도 더러 있다는 점이다. 통계에 따르면,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악행을 일삼는 것 같지만 절대 만날 일없을 것 같은 외진 동네에서도 출몰할 때가 있으니 그야말로 전국구 조폭처럼 어마 어마한 세력을 확보했다고 봐도 과언이아니다. 관광 개발로 환경 문제가 대두되는 제주도에까지 빠르게 퍼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개발의 이면 더러운 어둠 속에서기생하는 병적인 존재가 틀림없다. 그동안 이 친구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숱한 노력을 기울여 봤지만 사채꾼보다도 더욱 집요한추적으로 따돌릴 수가 없었고 어찌 된 영문인지 한동안 소식이 뜸할 때가 있었지만 상황을 탐색하기 위한 은신의 일환일 뿐결코 인연의 끈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신분제도에 갇힌 타고난 운명처럼 지금 상태를 벗어날 수 없으며 죽을때까지 몸에 새기고가야 할 21세기 주홍글씨 이다. 이 친구와 영원한 이별을 하게되면 난 아프리카나 극지방 같은 혹독한 환경도 견딜 수 있을 것같고 싸구려 화학 섬유로 만든 옷을 입어도 날개 단 듯 화려한 스텝을 뽐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차라리 아무것도 몸에걸치지 않는다 해도 당당히 거울 앞에 설 수 있을 것 같고 이성을 만날 때에도 굳이 스케줄 핑계로 날짜를 미루지 않고 가장초췌한 모습일 때도 환한 조명이 있는 장소를 자신있게 택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야말로 새로운 삶이 펼쳐지고 행복으로 이르는길이 크게 단축되는 순간이라 단언할 수 있겠다. 때만 되면 발현되는 스티그마타처럼 아픈 상처를 남기고 가는 친구. 잡아죽일래야 잡을 수도 없는 말코비치 머릿속 유령같은 친구. 그것이 단 십년이라도 앞으로 남은 여생에 대해 정문은 아니더라도화장실 키 정도를 쥐고 있는 친구. 그 못된 친구의 이름은 아토피이다.

2.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몸에서 개미가 기어다니는 환각을 경험하는 마약 중독자처럼 종일 몸을 긁어댄다. 수업을 듣다가도 대화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잠을 자다가도 북 북 가죽 긁는 소리를 낼 뿐이다. 그래서 증세가 심할 때에는 군데 군데 피딱지가 들러 붙게 되고 간혹 영문을모르는 친구들로부터 엉뚱한 의심을 사기도 한다. 검은 재킷이라도 입는 날이면 목 주변에 떨어진 두피가 확연히 드러나고 졸지에머리도 안 감는 지저분한 놈이 되곤 한다. 입 주위 피부는 항상 허옇게 일어나 있으며 입술은 킨타쿤테 처럼 부풀어 오른다.가물은 논밭처럼 갈라진 입술을 하도 핥아댔더니 이제는 색이 바래 얼굴 색과 구분이 안 간다. 그래도 나이가 들면 놀림이라도 안당하지 어렸을 적에는 친한 친구들조차 문둥이라는 잔혹한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전염이 안 되는 병이라 천만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꽃마을이나 소록도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눈먼자들의 도시'가 남의 일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남의 시선에 신경쓰게 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마련이다. 증세의 심각한 수준은 남자의 경우 국가적 차원에서 검증받을수 있는데 그 기회가 되는 것이 바로 군대 신검이다. 나같은 경우 천식은 없고 그래도 때에 따라 호전된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있기 때문에 3급 현역에 해당된다. 아토피의 증세가 거의 온 몸에 걸쳐 나타나는 경우는 4급에 해당될 것이고 5급 면제를 받는사람이라면 정말 그 상태는 절망에 가깝다. 장갑, 마스크, 모자, 안경으로 온 몸을 꽁꽁 숨기지 않는 이상 멀리서 보더라도 한눈에 아토피 환자임이 분명해진다. 가려운 데를 긁다가 상처가 나고 그 상처가 아물면 또 다시 긁어 피부를 상하게하고 그렇게 자해와 회복을 번갈아가며 수년을 하다보면 피부가 재생력을 잃고 딱딱한 껍질로 변해간다. 과메기가 되기 위해 한 겨울혹독한 바깥 날씨 속에서 냉동과 해동을 번갈아 겪게되는 꽁치나, 인간에게 불을 전달해주고 매일같이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야하는프로메테우스도 아니다. 고통을 받는 이유에는 그 어떠한 목적도 숭고한 의미도 없다. 아토피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이생기는 이유도 어쩌면 그 공허함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아픔과 함께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당신은 정말 용기있는 자이다.

by 배려 | 2008/11/01 23:15 | | 트랙백 | 덧글(0)

천재소년 경용이

경용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강남 8학군 무균질 교육을 쫓아 초등학교 5학년때 전학을 온 까닭에 주위 친구들을 파악하는 데에는 남들보다 다소 시간이 걸렸다.흔히 들리던 얘기로 경용이가 공부를 좀 잘 한다고 하던데 내신이나 전교석차가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검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물며 시험을 봐도 전과목 백점을 맞는 올백이 왕왕 등장하곤 했으니 단지 시험 좀 잘 본다고해서 천재소리 듣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서프라이즈' '스타킹'류의 미디어가 발 벗고나섰으면 모르겠지만 그래도 경용이는 암기나 속셈의 달인과는 거리가 멀었고 예술, 예능 쪽으로는 더더욱 젬병이었다. 어쩌다외국에서 좀 살다 온 친구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남들보다 두드러지는 경우는 있었지만 아이들의 눈에는 그건 그저 마술 혹은서커스와 같이 일종의 기예를 보는 느낌이었고 오히려 한국식 교육에 익숙치 않아 시험보는 족족 눈물을 훔쳐야하는 가련한영혼이었다. 어짜피 내 성적도 경용이처럼 상위권이었고 운동이나 예술쪽에는 내쪽이 더 재능이 있었으니 조용한 성격에 마르고 키작은 친구는 솔직히 말해서 별 볼일 없었다. 반에서 가장 주목받고 인기 있었던 남아는 치타처럼 빠르게 달리거나 김흥국의 호랑나비춤을 가장 잘 소화하는 친구였으니 말이다.

중학교 3학년때 같은 반 급우로 다시 만나기까지 경용이에 대한 전설은 아직 뱃속 태동 단계를 채 넘어서지 못한 듯 하였다.오히려 그 당시 천재로 인정받던 친구는 연우란 친구로 나와는 다른 초등학교를 나와 미처 알지 못했지만 전국단위 수학, 과학경진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었다. 경용이와는 다르게 그는 정말로 엘리트 전철을 밟는 듯 했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화려한수상 경력이 그의 천재성을 증명하였다. 그로인해 때때로 학교 정문에는 연우의 이름 석자가 큼지막하게 적힌 플래카드가 걸리기도하였고 교장 선생님은 아침 조례시간에 전 학생들을 상대로 연우 전설을 설파하기도 하였다. 이 정도쯤 되니 졸업할 무렵 연우가MIT대학에 조기 입학할 때에도 크게 놀라는 이 없었다.

경용이는 연우와 무척 달랐다.
그는 누군가의 주목에 부담스러워 하는 듯 하였다.
속세를 떠나 아무도 없는 산중에 칩거하는 역사 속 귀인들 처럼, 파파라찌의 눈을 피해 수염을 잔뜩 기르고 대중들 속으로사라져버리는 할리웃 스타처럼 그렇게 스스로의 천재성을 감추려고 하였다. 적에게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던 장군의 단호함을 본받은 듯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결코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전교 일등을 하게 되면 학생 대표로 단상에 올라 상장을 받게되는데 경용이가 그 위치에 호명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매번 당당히 그 자리를 거머쥐는 것은 무서운 집념이 벽을 타고 전해올정도로 뜨거운 옆집 미옥이였다. 오히려 반에서도 1등을 놓치는 법이 빈번하였다. 보통 2등을 주욱 유지하였고 혹시라도 1등을하게 되면 무척 멋적어 하였다. 담임이 주는 상장을 받으려는 발걸음을 따라  '본의 아니게 무리했군'하는 일종의 패배감을흘렀다. 좀처럼 공부에 대한 열의를 읽을 수 없었다. 공부를 잘 하는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만든 과외그룹을 탐하지도 않았고수업때는 마냥 조용히 있다가 종만 땡 치면 엎어져 자거나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며 낄낄거렸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언제나항상 공부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고 도통 특징이 없는 귀신같은 존재들이 함께 했다.
점심시간에 갑자기 친구들에게 백원만 백원만 푼돈을 구걸하더니 한 학년 전체를 다 돌고오는 그의 주머니는 동전의 무게로 허벅지까지늘어졌었다. 그 돈으로 화이트 데이때 좋아하던 여자에게 선물 한 바구니를 주고 오는 엉뚱한 녀석이었다. 연합고사 백일전에는 학교어디서 낮 술을 했는지 얼굴이 벌겋게 돼서 들어왔다. 그런 채로 수업을 들으면 큰일이겠다 싶자 쌀자루를 뒤집어 쓰고 교실 뒤에서폐품인척 자빠져 위기를 모면하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도 그가 향하는 곳은 그의 집이 있는 쪽과 전혀 다른방향이었고 몇 안 되는 그의 패거리들과 함께 주공 3단지 구석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지곤 하였다. 그가 담배를 피우는 걸 본 적이있다고 누군가 얘기를 했지만 선뜻 충고하고픈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기행을 벗삼으면서도 성적은 늘 상위권을 유지하는 녀석이었기에큰 걱정은 하지 않았거니와 왠지 타락한 모습을 비춤으로써 천재성을 감추려는 연막작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는은근히 겉담배 피면서도 어지러운 척 벽에 몸을 기대고 이렇게 말 하겠지.

「나도 너희들처럼 때론 방황과 일탈에 몸을 맡겨버리고 싶어.  
   나는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야. 단지 성적이 내 노력에 비해 잘 나온 거지만.」
문득 영화 '비트'에서의 로미가 스쳐간다.

하지만 그렇게 까지 의도적으로 평범함 속에 위장하려고 한 것은 아닐 수도 있음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던 시점. 별다른 노력이 보이지 않음에도 항상 나보다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비결을 알고 싶어 그에게 접근하였다.

「경용아 너는 왜 그렇게 공부를 잘 해? 어떻게 하면 시험을 잘 보는거야?」
직구 승부를 즐겨하는 나의 태도에 조금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러더니 머쓱한 표정으로 상황을 넘기려고 하다가 그래도 나에게 뜻 밖의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는 식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 뭐 그냥... 다 외워.」
「뭐? 교과서를 다 외운다고?」
「응.」

아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교과서 위주로 공부한다는 전국 수석의 인터뷰는 들어봤어도 교과서를 다 외운다는 대답은 난생처음이었다. 교과서가 무슨 무공을 적은 비서(秘書)도 아니고 거기에도 엄연히 중요한 대목과 시험엔 평생토록 나오지 않을 것들이뒤섞여 있을텐데. 나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분명 선생님이 바라보는 시각과 유사하게 책을 읽고 요약 정리를 할거라 예상을했었고 바탕체 폰트크기 9 정도로 모두 동일하게 쓰인 문자들 속에서 다빈치 코드를 읽어내듯 시험에 나올 법한 내용들만 솎아내는그만의 비법을 알고 싶었다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문제집 광고에서나 볼 수 있을 고득점자들의 필살 노트를 공개하라는 것 까지는아니었지만 중학교 시험이 내 무책임한 질문에 단순 암기력 테스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우연히 그의 자리에서 수학 용어가 쓰여진 종이를 발견한 것은 당췌 그의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혼란에 빠져있을 때였다.처음엔 그저 뭔가를 적은 것이겠지 하였지만 자세히 보니 검은 문자에는 수학 기호가 섞여 있었고 슬쩍 보았음에도 그 내용은 중학교이상의 수준이었다. 중학교 3학년 여름 방학이 지나면 대개 학원에서 수학의 정석 책을 예습할 때였고 간혹 공부 좀 한다는 친구의책상 위에 그 절제되고 위엄있는 표지가 나 보란듯이 꺼내어 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때였다. 학원에 다니지도 않고 정석을 펼쳐놓지도 않은 그에게서 숨겨진 무언가를 발견하자 역시 이상한 동질감이 생겼다. 그래 너도 결국 부모님의 기대를 잔뜩 떠 안고남들처럼 과외받고 피터지게 공부해야 하는 입시 지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구나.

「경용아 이건 뭐야?」
종이를 집어 들며 물었다.
「아 이거? 이거 누가 팩스로 보낸거야.」
오호라. 너는 새롭게 등장한 팩스 과외라는 걸 하는구나.
선생님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세심한 첨삭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가격은 보통 대학생 과외보다 저렴한, 1석2조의 방식을 택했구나. 나는 아직 친구들과 반쯤 같이 논다는 기분으로 한달에 십만원짜리 동네 보습학원 다니는 수준인데 너는 꽤괜찮은 사교육을 남몰래 받고 있었구나. 역시 성적은 투자한 만큼 나오는 법이지. 이런 저런 섣부른 판단이 끝나기도 전에 경용이는하던 말을 이었다.
「좀 알고 지내는 서울대 수학 교수가 있는데 그 분이 가끔 풀어보라고 문제를 보내.」
「뭐? 과외가 아니고?」
「하하 그런건 아니고 그냥 심심할까봐 보내주는데 꼭 해야 되는건 아니야.」
「잠깐 이리 좀 줘봐.」
뒷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에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내용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생전 처음 보는 기호로 암호같이 쓰인 문제들을 보니이건 이미 고등학교 1학년 수준은 훨씬 넘은 듯 보였다. 무슨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예상 문제지라고 하는게 더 그럴 듯 하였다.역시 그랬구나. 서투른 동질감은 이내 패배감으로 전락하였고 그제서야 경용이는 우리와 다른 놈이라는 걸 뼛속깊이 인정하는 꼴이되었다. 굳이 누가 물어보지 않아서였던 것이지 그는 천재가 맞았다. 아인슈타인이나 에디슨과 같이 정규 교육에 적응 못해 낙제를밥먹듯 했던 위인들의 일화에 속아 제도권 교육에서 성공적인 친구들은 오히려 천재가 아닌 그저 부모 말 잘 듣는 학생 소위범생(현재는 엄친아)으로 보일 뿐이었는데 그때만큼은 경용이가 천재와 버금가게 위대해 보였다. 비단 내가 확인 한 바는 수학에관련된 것 뿐이지만 정말로 교과서를 반야심경 완창하듯 모든 과목의 내용들을 줄줄 토해낼 것 같았다.

고등학교 이후로 경용이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중간자 역할을 할 만한 친구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생활반경이 전혀 달랐다. 경용이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모델이 되었던 악명 높은S고등학교에 배정받았고 나는 그 학교에만 가면 대학 가는 건 반쯤 포기해야 한다는 B고등학교로 갈라 섰다. 특수고 진학률을높이기 위해 중학교 담임은 적극적으로 과학고 입시를 권유했었지만 경용이는 끝내 평범한 길을 택하고 말았다. 하지만 당돌한 결정에대한 대가라고 하기에 S고는 조금 잔인해 보였다. 재단 이사장 친인척 비리와 군대를 방불케하는 살벌한 얼차려의 역사가도시괴담처럼 퍼져있었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온갖 놈들이 아웅 다웅 부대끼면서 수컷으로서의 욕망이 마구 발산되는곳이었기 때문이다. 공부 잘 한다고 열외로 쳐주는 온정따위는 애초부터 기대하기가 힘든 그야말로 정글이었다. 그러한 곳에서 어떤처세술로 삼년을 보냈을지가 무척 궁금하다. 여전히 학교에서 조용히 수업을 듣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화장실에 들어가 몰래 담배를태우며 우정을 쌓았을지. 두발 규제에 반항하다 학생 주임의 현란한 바리깡 솜씨를 맛 보았을지.교복을 벗고 가끔 락카페에서 몸도흔들었을지. 수능 백일 전에 백일주를 먹고 무사히 귀가 했을지. 돌고 도는 포르노테입에 흔쾌히 손 들었을지. 그렇게 경용이는그저 어쩌다 상상속에서나 등장하는 생물이 되었다. 딱히 이렇다 할 추억이 없어도 그렇게 똑똑한 친구가 주변에 있었던 적이 없어서그랬던건지 공부하면 나는 항상 그 친구를 떠올리게 되었다.  

스무살때인가 동네 친구들과 편의점 앞에서 수다를 떨던 와중에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친구가 불현듯 경용이 얘기를 꺼냈다. 그친구도 공부를 무척이나 잘 했었고 어쨌거나 당당히 경용이와 같이 자랑스러운 S고 내신 1등급 이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매번수능에 실패를 해서 당시에 삼수를 하는 중이었다.
「경용이는 다시 서울대 법대를 갔다는 얘기가 있어.」
그의 말에는 부러움이 반쯤 섞인 듯 했다.

「진짜? 근데 다시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몰랐냐? 걔 원래 서울대 의대잖아.」
「뭐? 서울대 의대? 근데 법대를 왜 가?」
「그러게 말야. 그냥 사법고시 할 건가 보지.」
「설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서울대 의대를 버젓이 다니던 친구가 갑자기 법대를 갔다는 사실이 쉽게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화제의 대상이 경용이인 만큼우리는 그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었다. 지금까지의 행적을 봤을 때 경용이는 전설적인 록그룹 백두산의 리더에서 돌연트로트가수로 변신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유현상만큼 엉뚱하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일단은 서울대 의대에 갔었네 뭘.」
왠지 내가 느낀 그의 천재성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라도 한 듯 내심 흐뭇한 감정이 돌았다. 하지만 의사가 된 경용이의 모습이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는 엉뚱한 상상을 실현시켜서 세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사람 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일까. 빌 게이츠나스티브 잡스, 혹은 구글의 창업주는 연상이 되지만 병원에 갇혀 일상을 반복하는 직업을 갖기에 조금 아까운 인물 같았다. 좋게생각하면 '닥터K'나 '블랙잭' 혹은 어이없게도 '닥터 노구찌' 같은 의학 만화가 그의 여린 감성을 자극했을 수도 있겠지만어디까지나 부모의 권유에 따랐을 확률이 가장 높고 다른 과를 택하기에 그의 성적은 너무 아까울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갑자기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누구는 3대에 걸쳐 꿈을 꿔도 감히 이룰 수 없는 서울대 의대와 법대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화개장터 쯤으로 알고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좋은 대학을 간다고 다 천재 소리를 들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남들은 전력질주를 하고 있을 때 이미 결승선 앞에서 여유롭게 카메라를 바라보며 승리의 세레머니를 날리던 우사인 볼트같던 친구에게 넌 정말특별한 놈이라고 웃으며 말해 줄 여유쯤은 가져도 좋을 것이다. 대학에 가서 동기들과 술 푸느라 겨우 낙제를 면했을 수도,첫사랑의 기억에 몇 달 폐인처럼 살았을 지도 모를 정도로 그에게도 인생은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적어도 이 동네에서 학창시절을보냈던 친구들에게 있어 경용이는 언제까지나 천재소년으로 남을 것이다.

by 배려 | 2008/10/20 23:14 | | 트랙백 | 덧글(0)

스물 일곱을 넘긴 자의 여유

천재는 스물 일곱에 요절을 한다고 스물 네살쯤에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다.
당장 검색해도 지미 핸드릭스, 커트 코베인, 이상, 바스키아 정도 밖에 찾을 수 없고 우리가 잘 모르는 천재들을 총 출동시켜 수명 그래프를 그려봐도 스물 일곱에서 정점을 이룰리는 없을텐데 왜 하필 스물 일곱일까.
아마도 서른 살 미만의 범위에서는 압도적인 분포를 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천재의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마약과 술, 여자(혹은 남자)로 스스로를 학대하다가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운명하는 것이 대게 스물 일곱이던가...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해 마감때마다 찾아오는 격심한 허리 통증이나 가끔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불규칙한 심장 박동 때문에남들보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은 해가 갈수록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결정적으로 스물 일곱을 넘기지 못할거라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나는 꽤 운이 없는 사람이란 평소의 지론 때문이다. 물건을 계산하기 위해 제일 짧은 줄에 서면어느샌가 계산대 앞에서 할머니가 동전을 하나 하나 세고 있다거나 점원이 급하게 자리를 비워 제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상은비일비재하다.뭘 응모해도 당첨된 적이 없었고 로또에서 숫자 두개 이상을 맞춰 본 적도 없다. 시험볼 때 답 두개로 고민하다 찍으면 항상오답이고 심지어 내가 때리지도 않은 사람이 나한테 맞았다고 증언해서 주위의 지탄을 받은 적도 있었다. 네덜란드 길거리를 지나가던남자가 얼굴에 웃음을 한가득 머금은채 "너 운 짱 좋은데?" 얘기해주었던 날도 구입한지 이틀 된 프라다 스니커즈를 신고 거대한개똥을 밟았을 때 뿐이었다.

굳이 겪지 않아도 될 불운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나는 운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단정지었고 그렇게 운이 나쁜 관계로 천재가 전혀 아님에도스물 일곱에 생을 마감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소중한 삶을 무책임하게 운에만 맡기지 않을거란생각에 말년 병장 몸 사리듯 아주 주의깊고 안전한 삶을 도모한 것이 나의 찬란한 스물 일곱이었다. 급류에 휘말릴까 물에 몸담그는 짓은 집에서만 하고 바람부는 날에는 간판 밑을 걷지 않았다. 공사장이 있으면 돌아가고 불의를 보면 꾹 참고 견뎠다. 이나이에도 계속 삶을 연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값진 노력의 결과라 생각한다.

by 배려 | 2008/09/12 23:21 | | 덧글(2)

칼코_1

B컵 정도로 딱 보기좋게 부푼 가슴을 안고 대학원 첫학기를 시작하던 학교 3층 스튜디오는 세계각지에서 건축을 배우겠다고 모인 학생들로 인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샴페인과 까나페만 없었다 뿐이지 그저 대상이 끌리는대로다가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모습들은 드라마에서만 보던 일종의 파티와 같았다. 나는 그다지 사교적인 성격은 아닌지라뭉게 뭉게 형성된 대화의 구름에 속하지 않고 간혹 누군가 스쳐가다 예의상 던지는 질문에 짧은 영어로 대답을 하던 소극적인물이었다. 그렇게 인종전시장을 방불케하는 난잡함 속에서 초연히 전체를 관망하는 자가 되다보니 갈라파고스 제도에 던져진 다윈처럼어느샌가 무리속에서 일정한 질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일단, 맨땅에 두발 딛고 열심히 썰을 풀어야 하는 자리이니 만큼 권력을 쥔 미국인들이 대화의 주제를 끊임없이 재편하는 주도적위치에 있었고 이런 '팍스아메리카'의 지리적, 언어적 영향권 안에 있는 멕시코, 인도 등의 친구들이 현 국제 정세를 재현하듯미국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물론 케이블티비 채널 바꾸듯 3개 국어를 버퍼링 없이 쏟아 내는 언어의 귀재, 유러피안들도두터운 세력을 이루고 있었고, 이날을 위해 수십년 갈고 닦아 온 듯한 완벽한 영어(게다가 미국인의 1.5배속으로)를 뽐내는 생전듣도 보도 못한 슬로베니아에서 온 친구와 뉴스에서 몇 번은 들어 봄직한 세르비아 친구도 눈에 띄었다. 서양의 수준을 월등히넘어서는 전투적 교육을 받아 온 아시안들은 괜히 어눌한 영어 솜씨를 공개했다가 한순간 부끄러운 존재가 될까 우려해 자기 나라사람들끼리만 똘똘 뭉쳐있었고 그러다 우연히 다른 아시아 친구의 구수한 발음을 듣기라도 하면 그제야 얼굴에 피어나는 행복감은'너와 나는 말이 좀 통하겠구나'하는 반가움을 넘어 안도감으로 까지 해석될 정도였다.

이렇게 언어와 인종으로 확연히 구별되는 심리적 거리는 지리적 거리와 다름 아니라고 결론내리는 순간 스튜디오 멀지 않은 곳에서벽을 등지고 앉아 분위기에 아랑곳 않고 자기들 할 일만 묵묵히 하는 거룩한 집단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뒤 알게 된 사실이지만그들은 L.A에 위치한 싸이악(sci_arc:남가주 건축 대학) 학생들로 이미 2학년 이었고 로테르담을 배경으로 프로젝트를진행하게 되어 우리 학교에 베이스 캠프를 꾸린 것 이었다. 양측 모두 종합 대학이 아닌 건축 전문 학교라 그런지 그동안 남다른교류가 있어왔고 가난한 우리 학교측에서는 넉넉한 공간을 대여해 재정 보충을 꾀할 수 있었으니 서로에게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싸이악 학생들은 이미 1학년을 거친 까닭에 서로에 대한 새로움도 없었고 프로젝트가 끝나는 6개월 후에는 L.A로 돌아갈운명이었으므로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는데에 적극성이 결여될 수 밖에 없었다. 상황 파악이 우리보다 빨랐던 그네들은 하루라도 빨리프로젝트를 진행하는게 신상에 이롭다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그렇게 노트북 모니터만을 주시하고 있었겠거니 하면 약간은 비호감이 될수도 있었던 그들의 자세는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학생이 있었다.
몇 명씩 모여서 집을 렌트했음이 분명한데도 누군가의 집 빈 구석에서 몰래 구겨져 자고 오는 듯한 행색을 하는 또래들과는 달리 그녀는 품격 있는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처럼 언제나 정갈한 자태로 등장하였다. 캘리포니아의 기후특성상 앞으로 언제 또 입을지 모르는 외투였음에도 HEMA와 같은 네덜란드 저가 매장에서 어쩔 수 없이 대충 구입한 느낌이아니었고 유럽의 변화 무쌍한 날씨에도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을 갖추기 위해 제대로 준비한 듯한 아이템들 이었다. 매일 같이가지런하게 빗어 넘긴 머리위로는 옅은 갈색의 광채가 흐르고 그 아래 명확하게 규정된 이마의 볼록함은 두상 어디 한군데 들쑥날쑥한 곳이 없을 것이라 생각 될만큼 탐스러웠다. 워낙에 앉아서 내리 작업만하고 과묵했던지라 도톰한 입술은 좀처럼 열리지않았지만 아주 가끔 미소지을 때 살며시 드러나는 치아들은 이제 막 잇몸을 뚫고 나왔다고 해도 믿을만큼 건강해보이고 가지런하였다.이렇게 어디를 훑어봐도 완벽한 조화를 자랑하는 외모에서 가장 압권은 데칼코마니로 얼굴을 빚어낸게 아닌가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코였다. 그녀의 코는 단순히 호흡기로써 존재하는게 아니라 예리하게 솟은 콧날로 상대방의 숨을 일순간 멈추게하는 효과가 있었고,야무지게 다문 입술과 함께 할 때에는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하지 못할 냉기를 뿜어내는 기능을 갖추었다. 이렇듯 전체적인 인상을결정하는 치명적이고 날카로운 콧날을 경외하듯 나는 그녀에게 '칼코'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덕분에 한국사람들 끼리는 그녀가 바로옆에 있다 하더라도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칭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였다.

미모와 콧날이 워낙 압도적인지라 동양인 친구들은 감히 말을 걸어 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전혀 별개의 수업을 듣기 때문에얼굴을 맞댈 기회도 없었거니와 행여 파티에서 본다 하더라도 살벌한 영어와 공감 안 되는 주제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림자 놀이를하기엔 얻을 수 있는 결과가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주변의 누구도 그녀의 마음 석자 알지 못했고 그렇게 신비감은커져만 갔다.
학기가 종반으로 치닫고 있을때쯤 우리들은 싸이악의 학생들과 함께 다른 학교에서 진행되는 워크샵에 참가하게 되었고 워낙 단기간에결과물을 만들어내는게 목적인지라 매일같이 게릴라같은 스터디가 여기 저기서 정신 없이 이루어졌다. 밥은 누구랑 어디서 뭘 먹어야할지 오늘은 또 몇시쯤 집에 갈 수 있을지 암담했던 생활들이 차차 익숙해지는 때가 되자 어느새 컴퓨터에는 마지막 발표를 위한판넬작업이 올라와 있었다. 칼코가 노트북에 꽂을 콘센트를 찾아 헤매다 내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것도 딱 그 순간 이었다.이보다 더 가깝게 거리를 유지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내심 의식하고는 있었지만 모든 감정이 배제된 '이퀄리브리엄'의 세계에서 온듯한 그녀의 작업 태도에 그 이상의 기대는 정말 무의미한 것이었다. 배터리가 완충되는 순간 미련없이 떠날 수 있는게 노트북이고그것이 워크샵의 밑바탕이니까 말이다. 흠잡을데 없는 형태미와 성능을 자랑하는 '애플'의 '맥북프로'는 그런 그녀에게 너무도 잘어울리는 작업환경이었고 왠지 '아수스'나 '델'은 L.A에서 온 처자와는 어울리지 않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작업을 멈추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많이 다루는 마지막 작업을 하다보니 노트북에 과부하가 걸렸던것 같다. 마감때는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그녀는 감히 '맥북프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하였다.

(후편에서 계속)

by 배려 | 2008/09/10 22:38 | | 트랙백 | 덧글(0)

시계

살짝 드러나는 몇 안 되는 수염에서 하루를 느끼고
깎지 못한 손톱에서 일주일을 감지하고,
어색하게 길어버린 머릿칼에서 한 달을 읽는다.

색이 바랜 반지에서 지난 4년이 빛나고
힘 없이 말라버린 피부에서 남은 수명 중 십년을 감하고
케케묵은 생각 속에서 이십팔년의 고지식한 청춘이 스쳐간다.

나는 현재이고 과거이면서 또 다른 내일이다.

by 배려 | 2008/09/06 23:11 | | 트랙백 | 덧글(0)

탈모의 추억

번듯한 직장 생활로 다달이 주택청약부금을 채우거나사랑하는 사람과 시제의 삼단계(과거, 현재, 미래)를 알콩 달콩 논하는 형편이 아님에서 오는 정신적 아노미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거북한 현실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수확의 계절과는 먼 아파트 장판 바닥에 거뭇거뭇 풍년을 이룬 머리카락들을 보고 있자면매일같이 생산해내는 스트레스의 양이 얼마만큼인지 산술적 설명이 가능할 정도이다.

뿌리를 끊고 자살한 머리카락들이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서글픈 생각과 함께 주섬 주섬 손날로 머리카락들을 한 데 모으다가문득 머리가 예상 외로 많이 빠져 지금과 같이 결실 없는 수확을 해야 했던 중학생 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런 생산량이면삼십대엔 가발 공장을 차려도 되겠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나름 긍정적으로 회피했던 그 때, 기왕 필요하다면 내 머리칼로 만든 가발이거북하지 않겠다고 파란 레쟈 커버의 수첩 사이에 검은 재료들을 저축해뒀던 엉뚱한 순간이 있었다. 다행히 고등학교때는 어린 아이들머리숱 많아지라고 한번 시원하게 깎는 생활 속의 진리를 증명하듯 스포츠머리가 꽤 효과적이었고(유전적 원인은 이것마저 소용이없겠지만) 일단 개체수가 짧다보니 머리가 빠져도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특별히 의식하지 않은 채 그동안은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는지 뒷통수에 미스테리 서클이 만들어졌는지 내 알 바 아니었다.

파릇 파릇한 청춘의 머리 꼭대기를 지배하던 당시의 고민은 여느 또래가 그러하듯 근원을 알 수 없이 뿜어져 나오는 반항심 때문이아니요, 될래야 될 수 없는 브라운관 너머의 존재에 대한 사랑도 아니요, 눈에 불을 켜고 책을 파보아도 오르지 않는 성적은더더욱 아니었다. 그런 세속적인 차원과는 거리가 멀었던,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얼토당토 않는 고민거리는 바로 '휴거'로 야기된종말에 대한 공포였다. 1992년 『다미선교회』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낚시질을 했던 휴거는 10월 28일 자정에 맞춰 선택된 예수신봉자들만 하늘로 승천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아한 자태로 지구여 안녕을 외칠 수 있는 자격요건이 어떤 건지는 몰랐지만 주변교회를 지날 때 들리는 우뢰와 같은 손뼉과 목놓아 부르는 노래들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가정과직장을 내팽개치고 휴거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그 여파란 대단했고 사회 지도층이라 불리우는 어른들이 앞장서서 종말을 이야기하니 이제막 가치관이 뇌에 착상된 소년은 불안에 허우덕대기 시작하였다. 헌데 이상한 점은 부모님도, 친구들도, 학교 선생님도,언론에서도, 정부에서도 그것이 명백한 거짓이다라고 얘기해 준 기억이 없다. 너무들 조심스러워서 오히려 진짜 가능성 있는 일이라쉬쉬하는게 아닌가 반문할 정도였다. UFO가 '미확인'이라는 모호한 수식어로 존재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빵상 아줌마의 낭만을꺾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한 까닭에 쇼펜하우어를 만난 적도 없는 학생이 생의 의지를 철학하게 되었고 비리 비리 말라가는정신은 자코메티의 조각에 견줄만 하였다.

드디어 10월 28일 운명의 시간은 다가왔다.
한국 시각으로 0시면 미국은 하루정도 차이나는 곳도 있고 유럽은 7~8시간 뒤일텐데 한국 기준으로 세계적인 부름이 이루어지는지아니면 각국의 0시를 기점으로  전지구적 릴레이가 펼쳐지는지 벌써부터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렇게 반신반의 하면서도라디오가 공신력있는 카운트다운을 하기까지 망부석처럼 기다리는 나 자신도 늠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문세의 별밤 클로징 멘트가끝난 후 얼마 안 있어 열두시를 알리는 기계음이 긴장 가득한 방의 정적을 깨는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뻔뻔하게 외쳐대던 것과는 달리 밖은 여느 때와 같이 초겨울 청명한 공기만이 흐를 뿐  휴거는 커녕 그 흔한 날벌레조차 눈에 띄지않았고 세상은 휴가철인양 고요하기만 할 뿐이었다. 일상의 스케줄대로 차분한 오프닝 멘트를 전달하던 새벽 디제이의 음성을 들으며애진작에 주무시던 부모님이 이미 여한없는 생을 살아서 속 편하게 계셨던게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은 설마 성적 상위권에속했던 아들이 그런 사이비의 농간에 넘어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셨지만 나는 정말 생각보다 순진했고 누군가와 종말론에 대해 솔직한고백을 나누고 위로받고 싶었었다. 그러는 몇달 동안은 은근히 괜찮은 척 밥도 잘 먹고 학원도 잘 다니는 평범한 날들 이었지만아무도 곁에 없을 때 안에서 홀로 삭힌 고민의 흔적은 결코 젊은이답지 않은 흔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by 배려 | 2008/09/04 23:13 | | 트랙백 | 덧글(0)

라디오가 주고 간 불면증

인터넷에서 배송비 포함 7000원에 구입 한 라디오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자신의 역할을 포기한 듯 불규칙한 숫자들을 정보 창으로 쏟아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어폰을 타고 들려오는 유희열의 목소리에서
89.1이 우연찮게 잡혔으니 오늘 밤은 이런대로 지내도 괜찮겠다 넘어간다.

made in china가 만들어내는 노이즈는 마침 비를 주제로 전개되는 노래와 섞여
예기치 않은 감성으로 다가오며,
억지로 기억 저편으로 밀어 넣었던 얘기들은 곧 잠이 들리라던 기대를 깨고
아무리 숨겨도 결국 드러나는 장롱 속 비디오처럼 빠알간 속살을 노출하고 있다.

by 배려 | 2008/07/27 03:04 |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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